중국정치

中, 구카이라이 졸속 재판 후폭풍 거세

차이나소식통 2012. 8. 17. 11:50

中, 구카이라이 졸속 재판 후폭풍 거세
2012.08.15 17:24 입력
▲8월 9일, 허페이(合肥)시 법원에서 보시라이(薄熙來)의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의 살인사건 재판이 열렸다.

[시사중국] 지난 9일 열린 구카이라이(谷開來) 재판이 졸속으로 종료되면서 중국에서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14일 보도했다.

 

VOA에 따르면, 중국 내에서는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구카이라이 살인사건 재판이 불과 7시간만에 종료된데 대한 실망감이 확산되고 있으며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구카이라이의 진정한 살인동기는?

 

일단 구카이라이의 살인동기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구카이라이는 아들 보과과(薄瓜瓜)가 생명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부득이 영국인 사업 파트너 닐 헤이우드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독립적인 평론가인 셰빈(解濱)은 인터넷에 발표한 글에서 구카이라이와 헤이우드의 갈등을 촉발한 자금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만약 진실한 수치를 공개한다면 사람들은 ‘우리 당’의 고위간부들이 그처럼 큰 부자일 줄 몰랐다며 충격 받을 것이다! 게다가 재산을 모두 해외로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될텐데, 그러면 공산당이 공탐당(共貪黨)이라는 사실이 들통나지 않겠는가”라고 썼다. 

 

마오쩌둥의 마지막 부인 장칭(江靑)의 변호사였던 장쓰즈(張思之)는 구카이라이의 진술은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변호사 천여우시(陳有西)도 당시 중학생에 불과했던 보과과가 그처럼 큰 사업에 관여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보시라이 가족의 재산 출처부터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카이라이 재판에 등장하지 않은 왕리쥔

 

구카이라이 살인 사건에서 관건적인 인물인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 공안국장이 이번 재판에서 언급되지 않았고 증인으로 나서지 않은 점도 큰 의혹을 낳고 있다.

 

왕리쥔은 지난 2월 청두(成都)의 미 총영사관에 진입해 망명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이 사건은 그 이후 구카이라이의 체포와 보시라이의 실각을 포함한 충칭 사태를 촉발한 계기가 됐다.

 

장쓰즈 변호사는 “왕리쥔이 구카이라이 살인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왕리쥔과 관련된 기타 사건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구카이라이 사건은 졸속 처리됐다”고 말했다. 

 

철저하게 배제된 보시라이

 

구카이라이 재판에 이어 중국 법원은 헤이우드 살인사건에 연루된 왕리쥔의 4명의 부하에 대한 재판을 진행했다. 법원은 성명을 통해, 궈웨이궈(郭維國) 전 충칭 공안 부국장, 리양(李陽) 형사경찰총대장, 왕펑페이(王鵬飛) 기술수사총대장과 왕즈(王智) 사핑바(沙平壩)구 공안 분국장 등 4명의 공안 간부들이 구카이라이의 살인사건을 알고도 은폐, 수사하지 않은 혐의를 시인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상사인 왕리쥔 및 보시라이의 지시대로 행동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검찰은 왕리쥔 및 보시라이의 관여 여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중공 당국이 이처럼 한 개 사건을 3개 사건으로 분리시킨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충칭 사태의 책임을 구카이라이와 왕리쥔에게 떠넘김으로써 보시라이로 인한 정치적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4인방의 배후는 마오쩌둥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 결과 마오쩌둥은 여전히 ‘위대한 지도자’로 남게 된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공의 이같은 수법이 언제까지 주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http://sscn.kr/news/view.html?section=1&category=3&no=26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