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글자도 빗나가지 않은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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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06 19:2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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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중국] 옛 사람들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말을 믿었다. 이는 하늘의 변화와 인간세상은 대응한다는 뜻으로 사람의 일생, 생로병사는 모두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이다. 고서 ‘회창해이(會昌解頤)’에 당나라 현종 시대에 살던 곡사명(曲思明)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곡사명은 당시 중앙정부의 여섯 부서 중 하나인 이부(吏部)의 관리였다. 이부는 관리 선발 업무에 참여했는데 관례적으로 정원 외 추가로 뽑은 관리인 원외랑(員外郞)을 한 명씩 선발할 수 있었다. 당시 이부 사람들은 누구를 추천해야할지 의논할 때 대부분 자신이나 친척을 높은 관직에 추천했다. 하지만 곡사명은 2년이 넘도록 자신은 물론 어느 누구도 추천하지 않았다.
당시 이부상서 조동희(趙冬曦)가 곡사명에게 마땅한 사람을 추천하라고 권했지만 곡사명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나왔다.
이상하게 여긴 조동희는 어느 날 또 곡사명을 불러 말했다. “현재 나의 권세로는 3천 명의 관리를 선발할 수 있고, 나의 붓에 따라 그들의 운명 또한 달라질 수 있다. 빈곤에서 벗어나 부유해질 수 있고, 비천함에서 벗어나 부귀함에 이를 수 있으며, 배부르거나 배고프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 붓끝에 달렸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모두 나에게 청탁을 하는데 유독 네가 아무 말이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에 곡사명은 대답했다. “사람의 생사는 운명에 따라 결정됩니다. 부귀는 하늘에 달렸고 관직도 올 때가 되면 반드시 올 것인데 어찌 관직에 오르지 못한다하여 근심하겠습니까? 그 3천여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것 역시 각자의 운명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다만 이부상서 대인의 붓을 빌릴 따름입니다. 저는 제 자신의 운명이 아직 형통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인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조동희는 “만일 자네 말대로라면 자네는 정말로 현인(賢人)일세. 자네는 자신의 화복(禍福)도 알 수 있는가?”라고 묻자 곡사명은 “현인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내년이 되어야 상서께서 내리신 관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청을 드리지 않은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동희가 “내년에 무슨 관직에 오를 것으로 보는가?”라고 물었다.그러자 곡사명은 “지금 제가 이곳에서 내년에 상서께서 내리시는 관직과, 그 관직을 받는 날과 복록이 얼마인지 적겠으니, 상서께서 잘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상서께서는 객실 벽에 구멍을 뚫어 이것을 그 구멍에 넣고 흙을 발라 봉하십시오. 만약 내년에 제가 관직을 받는 날 한 글자라도 차이가 있으면 저는 바로 이 계단에서 죽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조동희는 아무 말도 안했지만 속으로는 그가 오만방자하고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때가 되면 다른 사람에게 높은 관직을 주겠다고 다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황제가 온천에 왔다가 흰 노루가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회창(會昌)현을 소응(昭應)현으로 이름을 고친 뒤 이부에 칙령을 내려 그곳에다 관리를 배치하라고 했다. 조동희는 즉시 곡사명에게 그 현의 낮은 관직을 내렸다.
그런 뒤 조동희는 곡사명을 불러 말했다. “어제 황제께서 온천에 갔다가 흰 노루가 승천하는 것을 보고 그곳의 이름을 소응현으로 고쳤다. 그 현은 만년이 지나도 장안과 같이 발전할 수 없다. 지금 내가 자네를 그곳으로 발령을 냈는데 그럼 자네가 했던 말은 모두 거짓이 아닌가, 그러니 어찌 자신의 미래를 미리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곡사명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 후 “저는 높은 관직이 오른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상서께서 저 벽 속에 저장해둔 봉투를 열어 보시기 바랍니다!” 조동희는 즉시 벽을 뚫고 봉투를 뜯었다. 그 속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내년 O월 O일에 황제가 온천에 납시어 그 현 이름을 소응이라 고치며 관직을 하사하라고 할 것이다.’ 그 외에 받게 될 복록 또한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조동희는 매우 놀라면서 그후부터 무슨 일이 있으면 사람을 시켜 곡사명에게 물었는데 한번도 들어맞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얼마 후 조동희는 이부상서에서 면직된 후 또 사람을 시켜 곡사명에게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할지 물었다. 곡사명은 “서쪽으로 가시면 큰 군(郡)에서 관직을 맡게 될 것입니다”이라고 알려주었다.
10여일이 지난후 황제가 조동희를 불러 강서(江西) 지방에 대해 물었는데 매우 만족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황제는 곧 그를 강서 관찰사로 부임하게 했다. 그곳에 간 후에도 조동희는 일이 있을 때마다 곡사명에게 물었는데 매번 영험했다.
또 2년이 지난 후 조동희는 중환에 걸리자 또 곡사명을 찾아갔다. 곡사명은 “후사를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말을 듣고 조동희는 자신이 곧 죽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이 역시 들어 맞았다.
http://sscn.kr/news/view.html?section=2&category=10&no=4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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