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치

천안문 학생민주화운동 유혈진압 24주년

차이나소식통 2013. 5. 30. 17:29

천안문 학생민주화운동 유혈진압 24주년

2013.05.30 17:07 입력
▲해방군의 계엄군 탱크 부대를 홀몸으로 막아나선 한 용감한 청년은 1989년 6.4천안문사태의 상징적 인물로 남게 됐다.

 

▲1989년 봄, 개혁파 지도자 후야오방(胡耀邦)의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베이징 대학생들이 천안문 광장에 모여 대규모 추모 행사를 열면서 민주화 촉구 운동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부패척결, 인권보장, 민주화를 요구하는 베이징 대학생들의 시위는 베이징 시민들은 물론 전국으로 확산됐다.

 

▲천안문 광장에 모인 대학생들은 베이징 고위층이 민주화 운동을 '동란'으로 규정하자 단식투쟁에 나섰다.

 

▲대학생들의 정의로운 시위는 베이징 각계각층의 지지와 성원을 받았다.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학생들과의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는 베이징대 출신 학생 리더 왕단(王丹).

 

▲천안문 광장을 찾아가 학생들을 위로했던 자오쯔양(趙紫陽)은 당에서 축출돼 사망 때까지 가택연금 생활을 했다. 자오쯔양의 옆에 원자바오(溫家寶)의 모습이 보인다.

 

▲베이징에 계엄령이 내려지고 군인들의 무차별 유혈진압이 시작되면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탱크가 밀고 지나간 자리에 학생과 시민들의 시신이 처참하게 널려 있다.

 

▲홍콩에서는 지난 24년 동안 해마다 천안문사태를 기념하고 재평가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http://sscn.kr/news/view.html?section=1&category=5&item=&no=4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