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원자실의 기이한 경험’

차이나소식통 2013. 1. 22. 18:52

‘원자실의 기이한 경험’
2013.01.22 16:42 입력

 

[시사중국] 중국 원나라 말기, 산동(山東) 지방에 원자실(元自實)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자질이 낮아 글공부는 제대로 못했지만 집안은 부유했다. 같은 마을에 목군(穆君)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복건(福建) 지방의 관직을 받게 되었으나 그곳까지 떠나기에는 여비가 부족해 원자실에게 은 2백 냥만 빌려줄 것을 청했다. 원자실은 같은 고을 사람인 데다가 친분이 두터운 관계로 차용증도 받지 않고 빌려 줬다.

 

이윽고 산동에 큰 난이 일어나 원자실의 집도 도둑들에게 모두 털려 재산을 깡그리 잃었다. 때마침 복건 지역은 매우 안정적이어서 원자실은 처자를 데리고 그곳으로 가서 목군에게 의탁하려 했다. 배를 타고 겨우 복주에 도착하니 목군은 과연 위세 있는 관리 밑에서 권세를 잡고 있었는데 위풍이 당당하고 집안도 부유했다. 마침 목군이 외출하러 나오는 것을 보고 반가워하며 다가가 인사를 했다. 목군이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자 원자실은 고향과 성명을 대니 그제야 알아보고 놀라며 사과를 했다.

 

다음 날, 원자실이 다시 목군을 찾아 갔으나 술 서너 잔과 다과만 대접할 뿐 조금도 동정해 줄 기색이 없었다. 더욱이 빌려간 은 2백 냥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원자실은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니 여관 방은 쓸쓸하고 처자들은 원망하고 꾸짖으며 말했다.

 

“당신이 만리 길을 멀다 않고 이렇게 찾아와서 한 일이 뭡니까? 오늘 맛없는 술 석 잔에 팔려서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왔으니 우리들은 누구를 믿고 살겠어요?”

 

원자실이 부득이 다음 날 다시 찾아 가니 목군은 이미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원자실이 입을 열려고 하자 목군은 갑자기 말을 가로 막았다.

 

“아, 지난 번에 내가 여비를 빌린 것은 잊지 않고 있지만 보다시피 내 벼슬이 보잘 것 없고 녹봉도 얼마 되지 않아 갚지 못하고 있네. 하지만 옛 친구가 이렇게 먼 길을 찾아 왔으니 그 은혜를 어찌 저버리겠는가? 그 때 차용증을 보여 주게. 그러면 증서대로 차차 갚아 주겠네.”

 

원자실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나와 그대는 같은 마을에 살면서 어릴 적부터 친구 사이라 급히 빌려 달라고 하기에 증서를 쓰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무슨 말인가?”

 

이에 목군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 때 차용증이 분명히 있었는데 아마도 난리를 겪으면서 자네가 잃어버린 것 같네. 그렇다면 증서가 있고 없고는 따지지 않겠네. 다만 기한을 조금 늦추어 내가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 주면 꼭 갚아주겠네.”

 

원자실은 하는 수 없이 물러 나왔다. 원자실은 그의 말이 사기성이 있고 배은망덕하게 느껴졌지만 울타리에 뿔이 걸린 염소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형편이었다. 그럭저럭 보름이 지난 후 원자실은 다시 목군의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목군은 또 좋은 말로 다독거릴 뿐 끝내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이렇게 반년이 지나갔다.

 

원자실은 결국 너무나 궁핍하고 의지할 곳이 없어 다시 목군을 찾아갔다. 원자실은 엎드려 울면서 말했다. “설날이 가까이 다가왔고, 처자들은 춥고 배고파 하지만 주머니에는 돈 한 푼 없고 쌀독에는 쌀 한줌도 없네. 전에 빌려간 은 2백 냥을 지금 다 갚아 달라고 하지는 않겠네. 다만 수레바퀴 자국에서 말라 죽어가는 붕어에게 물을 조금 부어 살려주듯 불쌍히 여기고 우리 가족을 살려주기 바라네.”

 

목군은 그를 붙들어 일으키고는 손가락을 꼽아 날짜를 헤아린 후 말했다. “이제 열흘만 되면 섣달 그믐이니 그 날 집에서 기다리고 있게. 내가 받은 녹봉 중에 쌀 두 섬과 돈 약간을 사람을 시켜 자네 집에 보내겠네. 그러니 적다고 언짢게 여기지나 말게나.”

 

원자실은 그 말에 깊이 감사드리고 물러 나왔다. 집에 돌아 온 원자실은 목군의 말로 처자들을 위로했다. 약속한 그믐날이 되자 집안 식구들은 눈이 빠지게 목군의 심부름꾼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어떤 사람이 쌀을 지고 오는 것을 보고 원자실의 아이들이 반가워 달려갔으나 다른 집안의 물건을 배달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돈을 갖고 오는 사람들을 보고 아이들이 달려 나갔으나 역시 다른 집안 심부름꾼이었다. 원자실은 무안하고 부끄러웠다.

 

이처럼 아이들이 몇 차례 되풀이 하는 동안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끝내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없고 내일이면 정월 초하루였다. 오히려 목군에게 속아 쌀 한 톨, 땔나무 한 단도 준비하지 못한 채 설을 넘기게 되자 처자들은 서로 바라보고 서럽게 울었다. 원자실은 분통이 터져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몰래 칼 한자루를 갈아 가슴에 품고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다.

 

닭이 울고 새벽을 알리는 북소리도 끝났다. 원자실은 지름길로 목군의 집으로 찾아가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찔러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았고 길에는 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원자실이 목군의 집을 찾아다니던 길목에 원래 한 암자가 있었다. 암자의 주인 헌원(軒轅)은 원래 도를 닦는 도사였다. 헌원은 그날 경을 외우며 문 앞에 앉아 있었는데 마침 원자실이 그 앞을 지나갔다. 그런데 뒤에는 기이한 형상을 한 악귀 수십 무리가 뒤따르고 있었다. 어떤 귀신은 칼을 잡고, 어떤 귀신은 쇠몽둥이와 끌 같은 것을 들었으며, 머리카락은 산산이 풀어 헤치고 옷을 벗은 나체였는데 그 모습이 매우 흉악했다.

 

헌원은 괴이하게 생각하다가 잠시 후에 원자실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았다. 이번에는 반대로 머리에는 금관을 하고 몸에는 옥패를 찬 점잖은 선비 백여 명이 뒤따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깃발을 들고, 어떤 사람은 일산(日傘)을 들었으며 이들은 온화한 얼굴과 유순한 용모로 마음가짐도 평온하고 한가롭게 보였다. 헌원 도사는 무슨 일인지 궁금해 급히 원자실을 찾아가 보았다.

 

“자네는 오늘 새벽부터 어디를 가기에 갈 때 그렇게 바쁘게 갔다가 돌아올 때는 그렇게 천천히 왔는가? 어디 한 번 들려주시오.”

 

원자실은 숨김없이 말해 주었다. “다름 아니라 목군이라는 자가 의리가 없어 저를 낭패지경에 몰아넣었습니다. 너무 분해서 오늘 새벽에 서릿발 같은 칼을 갈아 가슴에 품고 그의 집에 가서 찔러 죽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집 문 앞에 가서 생각해 보니, 그는 나에게 죄를 지었지만 그가 죽으면 그의 처자들과 늙은 어머니는 누구에게 의지하겠습니까? 그가 나를 저버렸을지언정 나까지 그를 저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원한을 꾹 참고 돌아왔습니다.”

 

헌원은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다가 원자실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자네는 틀림없이 장차 복록이 있을 것이야. 신명께서 이미 그 사실을 다 알고 계시네.” 그리고는 새벽에 본 일을 빠짐없이 말해 주고 원자실을 위로해 주었다. 또한 약간의 돈과 쌀을 주어 우선 급한 대로 쓰게 했다.

 

그러나 원자실은 끝내 답답한 마음을 풀지 못했다. 저녁 무렵이 되자 끝내 참을 수가 없어서 깊은 산골 아래에 있는 팔각정에 몸을 던졌다. 그런데 갑자기 우물물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양쪽 언덕은 모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그 사이로 좁다란 길이 하나 있는데 간신히 발을 딛을만 했다. 원자실은 조심스럽게 절벽을 더듬어 들어갔다. 그렇게 굴 속으로 몇 백 걸음쯤 들어가니 절벽이 끝나고 길도 끝났는데 거기서 한 골목 빠져 나오니 천지가 밝고 해와 달이 비치는 별천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곳을 둘러보니 궁전이 한 채 서 있는데 ‘삼산복지(三山福地)’라고 금으로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

 

원자실은 그것을 우러러 보면서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긴 행랑은 낮인데도 고요하고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인적이라고는 없었다. 다만 어디선가 풍경 소리만이 구름 밖에서 은은히 들려 왔다. 원자실은 배가 몹시 고파 한 걸음도 더 떼지 못하고 피곤해 쓰러져 누웠다. 그 때 홀연히 도사 한 사람이 푸른 안개와 같은 옷자락을 끌고, 밝은 달처럼 빛나는 옥패를 흔들며 다가와 원자실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한림께서는 이번 여행의 재미가 어떠하셨습니까?” 원자실은 도사를 보고 공손히 두 손을 모아 예를 드리며 말했다. “여행의 재미는 좋았습니다마는 한림이라는 칭호는 무엇입니까?”

 

그 도사는 “아니 황궁에서 티베트에 보내는 황제의 조서를 쓴 일이 생각나지 않으습니까?”라고 물었다. 원자실은 알 수 없는 말을 듣고 말했다. “저는 산동에 사는 시골 사람으로 벼슬도 하지 못한 천한 선비입니다. 나이 사십에 눈이 있어도 한 글자도 볼 줄 모르는데 어찌 무슨 황궁에서 조서를 썼다는 말씀입니까?”

 

도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너무 굶주려 옛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매 안에서 배와 대추 몇 개를 꺼내어 먹으라고 주며 말했다. “이것은 신선의 과일입니다. 이것을 먹으면 지나간 일을 물론 다가올 일까지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원자실이 그것을 받아먹자 과연 그의 말대로 지난 전생의 일이 머릿속에 환히 되살아났다. 그리고 한림학사 시절에 황궁에서 티베트에 보내는 조서를 썼던 일도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원자실은 도사에게 물었다. “제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세상에 내려와 이러한 업보를 받게 되었습니까?”

 

“당신은 별로 죄를 지은 것이 없습니다. 다만 한림학사로 있을 때 학문이 남보다 낫다고 뽐내며 후배들을 잘 이끌어 주지 않았지요. 그러므로 당신을 어리석게 만들어 한 글자도 알아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한 당신은 벼슬이 높다고 자존심을 피우고 유랑하는 가난한 선비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며 의지할 곳이 없게 만들었지요.”

 

원자실은 듣고 자신의 돈을 떼어 먹은 목군에 대해 물어보았다. 도사가 이에 대답했다. “아! 그는 왕(王)장군의 창고지기였는데 재물을 몰래 제멋대로 써서 장차 화를 입을 것입니다.”

 

도사는 연이어 말하였다. “3년이 못 가서 세상이 크게 바뀔 것입니다. 그 때 큰 환란이 닥쳐 올 것이니 참으로 두렵습니다. 미리 피난처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문에 불이 나서 죄 없는 물고기가 화를 입듯이 당신까지 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원자실은 이 말을 듣고 도사에게 피난처를 알려달라고 하자 도사는 복령 지역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말을 마치자 도사는 황급히 말했다. “당신이 여기에 온 지 벌써 오래 되어 가족들이 매우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빨리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원자실은 돌아가려고 해도 길을 모르겠다고 했다. 도사는 한 좁은 길을 가르쳐 주며 그리로 나가라고 했다. 그는 도사에게 두 번 절하고 작별했다. 원자실이 2리 쯤 나오다가 산 뒤에 구멍 하나를 발견하고 빠져 나왔다. 하루도 안된 것 같은데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보름이나 지나 있었다.

 

원자실은 도사의 말대로 급히 처자를 데리고 복령의 한 마을에 가서 밭을 개간하고 채소밭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한 번은 밭을 갈려고 괭이로 땅을 파는 순간에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히 여겨 그곳을 파보니 은 네 덩이가 묻혀 있었다. 원자실은 뜻 밖에 많은 돈을 얻어 집안 형편도 점점 나아졌다.

 

그 후 원나라에 내란이 일어나 왕장군이 이끄는 대군이 복건성을 포위했고 그곳의 많은 관리들도 목숨을 보존하지 못했다. 그리고 목군도 결국 왕장군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 집안 재산도 모조리 몰수를 당했다. 세월을 헤아려 보니 겨우 3년이 지났는데 그 도사의 예언이 그대로 모두 들어맞았다.

 

출처: 명나라 전등신화(剪燈新話)

 

http://sscn.kr/news/view.html?section=2&category=10&no=3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