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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주 60년’ 연변의 명암

차이나소식통 2012. 9. 11. 17:53

자치주 60년’ 연변의 명암
2012.09.08 17:16 입력

한국 외화 벌이로 지역 경제 급속 성장

지리적 우세로 동북 신흥거점으로 부상

공동체·가족 해체 및 인구 감소 부작용


[시사중국]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은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는 1952년 자치구로 출발한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특히 한·중 수교는 중국 동북 변방의 낙후한 농업지대였던 연변을 천지개벽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크게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연변의 조선족 동포들이 한국에서 벌어 송금한 외화는 연변 경제를 발전시키고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수교 이후 한국을 다녀간 조선족은 복수 방문자를 합쳐 200만명을 훌쩍 넘어섰고 이들 상당수가 연변 출신이다. 그러나 급격한 인구 유출은 연변 조선족 사회에 물질적 풍요를 가져온 대신 여러 사회 문제를 야기하며 새로운 과제를 안겼다.


◇경제 성장 뚜렷‥한국 외화 기여


연변주의 지난해 지역내총생산(GDP)은 652억 위안, 1인당 생산총액은 2만9,782 위안으로 1952년 당시에 비해 각각 61배, 21.5배가 증가했다. 재정수입은 258만 위안에서 112억 위안으로 늘어 연평균 15.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무역 규모는 수출입통계 작성을 시작한 1954년 38만 달러였지만 2007년 10억달러를 돌파하고 지난해에는 18억5천만 달러를 기록, 무려 5천배가 증가했다. 이런 연변 경제의 급성장에는 한중 수교 이후 한국에서 일하는 연변 조선족이 벌어들인 외화가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한국 노무 연변 조선족의 송금액은 연간 10억 달러에 육박해 연변주 GDP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에서 유입된 외화는 연변을 중국 내 소수민족 자치지역 가운데 손꼽힐 만큼 부유한 자치지역으로 탈바꿈시켰다.

 
◇물질적 풍요의 그늘‥신조어 ‘이태백’


한국과 중국 내 대도시로의 급격한 인구 유출은 조선족 인구 감소와 가족 해체 등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연길에서는 매년 평균 1,800쌍의 부부가 이혼하고 있다. 주된 이유는 부부 한쪽이 오랜 외지생활을 하면서 생긴 불화 때문이라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조선족 자녀는 탈선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취업 연령이 돼서도 취직을 하지 않거나 직장에서 오래 버티지 못해 연변에서는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신조어(新潮語)까지 생겼다.


현지 언론들은 외국에 나간 부모가 연변에 혼자 남은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에 중국 대졸자 초임보다 많은 매월 3천~4천위안(약 55만~75만원)을 보내다 보니 과소비와 취업 기피 풍조가 만연했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연길 시내 백화점에 근무하는 이모(35) 씨는 “어쩌다 취직을 해도 부모의 간섭조차 받아본 적 없는 젊은이들이 쉽게 사표를 던지고 다시 이태백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회사와 상점마다 조선족 일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줄어드는 조선족‥자치주 지위 ‘흔들’


연변 조선족들이 한국이나 대도시로 떠나면서 자치주의 지위도 위협받고 있다. 연변주의 조선족 인구는 1995년 86만명에서 2009년 80만명으로 7%가량이 줄었다.


1999년까지 2명을 유지했던 젊은 여성들의 평균 출산율이 2000년 이후 급속히 하락해 0.7명 이하로 떨어졌고 결혼 연령도 점차 높아져 고령 출산이 늘고 있다. 청년층이 일자리를 찾아 대거 떠난 점도 조선족 인구 감소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연변 전체 인구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36.7%에 그치고 있다. 조선족 자치주 건립 초기였던 1953년 조사 당시 70.5%를 차지했던 것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낮아진 것이다. 소수민족이 차지하는 비율이 30%를 밑돌게 되면 자치주 지정이 해제될 수 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조선족 감소세가 계속되면 연변이 자치주 지위를 잃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다가온 기회‥동북진흥 핵심지 부상


중국의 동쪽 끝에 위치해 북한, 러시아와 접경한 연변은 중국 동북진흥정책의 핵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훈춘은 중국이 동해 항로를 확보하기 위해 사용권을 획득한 나진항과 연결되는 대북 창구이자 하산 등 러시아 극동지역과의 교역 거점이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 4월 변경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훈춘에 국가급 경제특구인 ‘훈춘국제합작시범구’를 지정했다. 또한 북한 나진항을 확보한 중국은 두만강 유역 경제벨트인 창지투(長吉圖·창춘-지린-투먼) 개방 선도구(先導區)를 건설하고 훈춘-나선 일대를 국제적인 물류거점으로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연변의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 국내외 기업을 대거 유치함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면 외지로 나간 조선족들이 되돌아오고 보다 공고한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연변대 경제관리학원 이종림 교수는 “연변에 다가온 기회를 최대한 살리는 것이 중요하며 인구 감소와 인재 유출 등의 문제점은 지역경제가 살아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내 조선족 ‘3세대’ 위상 높아져


중국 내 조선족의 위상이 높아진 것과는 달리 한국 내 조선족의 위치는 여전히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한 부모 세대들의 노력으로 좋은 교육환경 속에서 한국이나 일본에서 유학했거나 중국의 명문대를 나온 ‘3세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이들의 평판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실제 2008년부터 조선족에 대해서도 허용된 재외동포(F-4) 비자 가운데 우수한 인재(F-4-2)로 분류돼 비자를 발급받은 사람이 지난해 말 현재 2만9,617명에 달한다. 이들은 한국내 대학과 대학원에 유학해 석·박사가 된 다음 취업을 하거나 중국 또는 다른 나라에서 전문가로 특별 채용돼 자리를 잡고 있다.


30~40대의 3세대들은 주로 대학교수를 비롯해 증권사 경제전문가, 정책연구원·기업의 연구원, 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부모세대처럼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떳떳이 명함에 한글 이름과 중국 이름을 병기한다. 한국 국적 회복을 위해 노력한 부모와는 달리 국적에 집착하지 않는 특징도 있다.


하나대투증권에서 중국 증시 담당 경제전문가로 일하는 이기용(32) 씨는 “주위의 전문직 친구들은 회사에서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거나 무시를 받는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경쟁력을 갖춘다면 조선족의 위상도 자연스럽게 향상된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