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치

美관리, 천광청 둘러싼 미-중 협상 내막 폭로

차이나소식통 2012. 5. 21. 18:44

美관리, 천광청 둘러싼 미-중 협상 내막 폭로
2012.05.21 16:45 입력
▲5월 2일, 게리 로크 미 대사의 부축을 받으며 베이징의 미 대사관을 나서고 있는 천광청.

 

[시시중국] 지난 수 주간, 미중 양국은 천광청(陳光誠) 사건으로 진땀을 뺐다. 하지만 구체적인 협상 과정에 대해서는 모두 침묵을 지켰다. 

 

천광청이 미국에 안전하게 도착한 후 내막을 잘 알고 있는 한 미국 관리는 워싱턴포스트(WP)지에 양국 사상 가장 긴장하고 가장 이례적이었던 이번 협상에 대해 입을 열었다. 

 

천광청은 지난달 산둥성의 자택을 탈출한 후 베이징의 모처에 숨어 있었다. 당시 그는 발에 골절상을 입는 등 온몸에 상처투성이였다. 천광청은 공안의 추격을 피해 계속 은신처를 옮겼기에 미 대사관에 진입할 기회를 포착하기 매우 어려웠다. 

 

4월 25일, 그가 대사관 진입에 성공해 보호를 요청하자 대사관은 폭탄을 맞은 것처럼 다급하게 돌아갔다. 결국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신중한 판단을 거쳐 수용하는 쪽으로 지시를 내렸다. 4일 후 미중 양국은 긴장한 분위기 속에서 천광청의 신병 처리를 놓고 협상을 벌이기 시작했다. 

 

중국 외교부에서 긴장한 첫 협상 벌여

중국측, "천광청 소재 알리면 반역죄로 몰겠다" 협박

 

29일 오전, 중국 외교부에서 첫 협상이 벌어졌다. 미국 측에서는 일정을 앞당겨 베이징에 도착한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 게리 로크 미 대사와 해럴드 고(한국명 고홍주) 미 국무부 법률고문을 포함한 6명의 관리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중국 측에서는 미국과 협상 경험이 많은 추이톈카이(崔天凱) 외교부 부부장 등 10명의 관리가 참석했다. 이들 중 2명은 낯선 관리였는데, 자기소개도 다른 관리들에 의한 소개도 없어 미국측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며칠후 미국측은 이들 중 한명이 중국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에서 파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른 한 명도 중국 정보기관 관계자일 것으로 추측됐다. 당시 중국 측은 천광청이 미 대사관에 체류하고 있다는 사실이 외부에 드러나면 천광청을 ‘국가 반역죄’로 기소하겠다고 협박했다.

 

첫 협상후 미국 국내에서는, 이들보다 직급이 높은 중국측 고위 관리들과 협상을 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WP와 인터뷰를 가진 미국 관리는 협상 대상은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천광청이 당시 중국에 남아 있겠다는 의사를 확실하게 밝히자 미국 관리들은 천광청에게 중국 관계자들과 상호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중국 관리들은 아예 천광청을 만나길 거부했다.

 

미국 측이 천광청과 협상하는 과정은 중국 측 관리들과 협상하는 과정만큼이나 어려웠다고 한다. 내막을 잘 알고 있는 미국 관리는, 천광청이 그리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미중 양국의 이날 협상은 30시간 이상 지속됐다. 중국 측 대표들은 권한이 제한돼 있어 추이톈카이 부부장은 늘 자리를 떠나 상급에 협상 결과를 보고해야만 했고 지시가 내려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이 미국 관리는 “우리가 한 가지 제안을 하면 즉시 답변이 돌아왔다”면서 “베이징의 반응이 이처럼 빠르고 효율이 이처럼 높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천광청의 '변심'으로 양국 당황

클린턴, 다이빙궈 국무위원과 재협상

 

당시 곧 열릴 예정이었던 양국 고위급 대화는 미국측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중국측은 대화가 열리는 3일 전에 협상을 끝내길 바랐다. 협상 4일째 되던날, 중국측은 천광청의 아내와 두 아이를 베이징으로 데려오는데 동의했다.

 

2일, 클린턴 장관이 베이징에 도착한지 몇시간 만에 천광청은 미 대사관을 떠나는데 동의했고 차오양 병원에서 가족과 재회했다. 대사관을 나서기 전에 로크 대사는 천광청에게 여러 차례 확인했고 천광청은 매번 모두 대사관을 떠나도 괜찮다는 의사를 밝혔다. 

 

천광청의 ‘변심’으로 비난을 받게 된 것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 관리는 WP를 통해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그는 천광청이 입원한 후 미국 대사관 관리들이 그와 연락을 지속하기 위해 핸드폰 3개를 줬다고 말했다. 입원 첫날 저녁 천광청의 곁을 지키던 미 관계자가 자리를 떠난 것은 그와 가족에게 사적인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는데 결정적인 실수가 될 줄 몰랐다고 이 관리는 말했다.

 

천광청은 병원에서 외신들과 많은 인터뷰를 하고 친구들과 통화를 한 후 이튿날인 3일,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떠나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그후 클린턴 장관은 직접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협상을 했다. 클린턴 장관은 앞서 협상에서 천광청을 2년 후 미국으로 오게 한다고 이야기가 됐는데 시간을 좀 앞당기자고 제안했다. 이에 다이빙궈는 자신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제안을 반대하는 추이톈카이 외교부 부부장을 뒤에서 설득했다.

 

원자바오 총리와 회동 후 극적 변화

중국측, 체면 유지하는 조건으로 천광청 유학 허용

 

나중에 클린턴 장관이 원자바오 총리와 회동한 후 극적인 변화가 생겼다. 신화통신이 천광청이 미국 유학을 갈 수 있다고 보도한 것. 그후 추이톈카이와 캠벨 그리고 다른 3명의 미국 관리들은 다시 만나 협의를 시작했다.

 

중국측 관리들은 당시 몇가지 요구를 제기했다. 천광청이 특별한 케이스로 미국 측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부인해야 하고, 중국이 외부 압력에 무릎 꿇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그를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석방할 것이며, 천광청에 대한 처리 결정을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쳐 도출해 낸 협상 결과로 묘사하지 말라는 등이었다.

 

그때부터 15일이 지난 후인 지난 19일, 천광청과 가족은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http://sscn.kr/news/view.html?section=1&category=3&no=2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