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념의 차이로 6백년을 그르치다’
- ‘일념의 차이로 6백년을 그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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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4.08 17:34 입력
![]() ▲간신으로 알려진 당나라 재상 이임보 |
[시사중국] 당나라 현종(玄宗) 시기에 20년간 재상을 맡았던 이임보(李林甫 683-752)는 스무살 때까지 진지하게 책을 읽지 않았다. 그는 낙양에 거주할 때 수렵에 빠져 사냥용 매와 개를 아주 좋아했다. 어느 날 그가 물구나무를 한채 쉬고 있었는데 한 도인(道人)이 나타나 말했다. “네가 비록 이런 일을 잘할지 모르지만 갑자기 재앙을 당하게 되면 후회해도 늦을 것이다!”
깜짝 놀란 이임보는 즉시 공손하게 도인에게 예를 취했다. 그러자 도인이 말했다. “내가 인간 세상을 떠돈 지 5백년이 지났지만 신선의 인연이 있는 사람은 너밖에 보지 못했다. 네가 나를 따라 수련하면 신선이 되어 승천할 수 있지만 만약 수련하고 싶지 않다면 20년간 태평한 세상의 재상이 되어 대권을 손에 쥘 수 있다. 돌아가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 한번 생각해 보고 3일 후 다시 나를 보러 오거라.”
3일 후 이임보가 도인을 찾아와 말했다. “저는 황실의 자손으로서 어릴 때부터 용감하고 의협심이 강했습니다. 만약 20년 동안 재상이 되어 대권을 손에 쥘 수만 있다면 신선이 부럽지 않을 것입니다.”
도인이 이 말을 듣고는 아주 실망해하며 말했다. “5백년 만에 겨우 한 사람을 만났는데 인간 세상의 권력과 부귀를 탐할 줄이야. 좋은 기회를 놓치다니 안타깝구나, 안타까워!”
이임보가 곧 후회하며 생각을 고치려 하자 도인이 말했다. “사람은 첫번째 염두가 가장 중요하다. 네가 이미 소원을 말했고 하늘의 신들이 이미 다 들었으니 바꿀 수는 없다.”
대신 도인은 그에게 당부했다. “네가 관직에 있는 기간에 마땅히 덕(德)을 많이 쌓고 널리 사람을 구해야 한다.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살해하지 말며 음험하고 간사한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3백년 후 여전히 신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임보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매우 아쉬워하며 도인과 작별했다.
얼마 후 이임보는 과연 관운이 트여 승진을 거듭했고 마침내 재상이 됐다. 하지만 그는 사람됨이 약삭빠르고 꾀가 많았다. 겉으로는 부드러웠지만 속은 전혀 달랐기에 사람들은 그를 ‘구밀복검(口蜜腹劍-입에는 꿀, 뱃속에는 칼)’이라고 불렀다. 때문에 당현종의 총애를 받아 장기간 재상으로 있었지만 이 기간 큰 난을 일으켜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살해했고 억울한 사건이 끊임 없어 백성들의 고통이 극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도인이 다시 찾아왔다. 이임보는 도인을 본 후 갑자기 옛 일이 떠오르며 너무나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다. 20년간 재상을 누렸지만 자신이 다짐한 것은 아무것도 실행하지 못했다. 가슴이 답답해진 그는 급히 도인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도인은 말했다. “너는 전에 내가 당부한 것을 실행하지 못했구나. 너에게 덕을 많이 쌓으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음험하고 잔인하게 사람들을 많이 죽였구나. 천제(天帝)께서 이 모든 것을 분명히 알고 계시니 무서운 질책과 징벌이 있을 것이다!” 이임보는 이 말을 들으며 끊임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후회하던 이인보는 저녁에 도인을 다시 찾아가 물었다. “전에 제게 3백년 후 한 번 더 승천할 기회가 있다고 하셨는데 아직 가능하겠습니까?” 그러자 도인은 말했다. “네가 저지른 행위가 천도(天道)를 위배했기 때문에 너에 대한 평가가 더욱 떨어졌다. 3백년을 더해 총 6백년 후에야 가망이 있을 것이다.” 이임보는 크게 후회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이임보는 곧 병에 걸려 죽고 말했다.
이임보의 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년 후 황제는 이임보가 돌궐족과 모반을 꾀했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관직을 삭탈하고 관을 파헤쳐 서민용 작은 관으로 옮기게 했다. 또한 이임보의 아들 이화(李和)와 친척 등 50명을 광동 지방으로 귀양을 보냈다.
출처: 일사(逸史)
http://sscn.kr/news/view.html?section=2&category=10&no=3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