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일 조선족의 회상’
- ‘어느 재일 조선족의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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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27 19:41 입력
![]() ▲지난 1970년대, 권력투쟁에서 위기에 몰린 마오쩌둥이 문화혁명을 발동하면서 수많은 중국인들이 무고하게 정치적 박해를 받았다. |
[시사중국] 나는 일본인으로 얼마전 도쿄에 사는 한 조선족이 문화대혁명 당시 할아버지가 받았던 박해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들었다.
최근 중국 조선족은 이민 러시로 일본이나 한국에서 공부나 객지벌이하러 많이 나오고 있으며 일본에도 약 3만명의 조선족이 있다. 그래서 선술집 같은 데서도 중국인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실은 조선족인 경우가 많다.
그들 상당수는 성실하고 정직한 성격을 갖고 있으며 춤을 좋아하며 솔직하게 말한다. 어느 날, 밤을 꼬박 새우며 아는 조선족과 야스쿠니 신사 문제 등에 대해 토론했는데 그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의 할아버지는 건축자재 회사에 근무했는데 일본에 건너간 경력 때문에 반혁명분자의 낙인이 찍혀 삭발까지 당했어요.” 그의 가족들은 원래 한국 경상북도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과 한국 모두 왕래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출국하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이는 그의 할아버지가 스파이로 몰린 원인이기도 했다.
조선족은 중국에서 2가지 언어 병행 교육을 받는 외 중학교부터 일본어 교육을 받기 때문에 어학 수준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한족보다 다른 외국인을 사귈 기회가 많다. 때문에 연변의 문화대혁명은 매우 치열했다.
원래 문화대혁명은 정치적인 목적을 넘어 단지 싫은 사람을 타도하는 도구로서도 사용된 측면이 있다. “저 녀석이 마음에 안들기 때문에 어떻게든 실각시키자.”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상대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 타도하도록 주위에 선동한다.
“홍위병들이 OO를 타도하자!”라고 외치고 있는 모습은 언론에 자주 보도되고 있지만 홍위병 자신들도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외치지 않으면 자신에게 불똥이 튀기 때문에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1년반 동안 사상개조 학교에 갇혀서 탄압 받았는데 석방됐을 때는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됐다. 다행히 그의 어머니는 반혁명의 혐의를 받았을 뿐 실제로 탄압받지 않아 그만큼 심한 처지가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출처: 일본 ‘홍색시대’)
http://sscn.kr/news/view.html?section=9&category=92&no=3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