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보시라이 부활 막기 위해 '강수'
- 후진타오, 보시라이 부활 막기 위해 '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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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29 02:15 입력
![]() ▲9월 28일, 중국 당국은 보시라이 전 충칭 당서기의 당적을 박탈하고 사법기관에 송치한다고 발표했다. |
[시사중국] 28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의 당적 박탈과 사법기관 송치가 결정됐다.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던 18차 당대회 개최 날짜도 11월 8일로 결정됐다. 차기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과 군사위원회 구성원도 이 회의에서 결정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로서 당대회를 앞두고 백열화 됐던 계파간 권력투쟁이 사실상 일단락됐다. 보시라이에 대한 엄벌이 결정되기까지 당내 각 세력간에 치열한 협상이 진행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시라이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의 대립은 몇 년 전부터 홍콩 언론 등을 통해 전해졌다. 그러나 보시라이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 주석의 깊은 신뢰를 얻고 있는 동시에, 차기 당 총서기로 내정된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과 같은 태자당에 소속돼 당내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보시라이의 심복인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부시장이 미 총영사관으로 피신하고,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가 영국인 사업가를 살해한 사실이 2월 이후 밝혀지면서 장쩌민 등은 보시라이를 실각시키는 것에 마지못해 동의했지만 형사 책임을 묻는 것에는 반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사례와 비교해 볼 때 보시라이는 특별 취급을 받고 있었다. 2006년 해임된 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당서기 등의 경우 중국 언론들은 곧바로 경제문제나 성 스캔들을 크게 알려 이미지를 추락시켰다. 그러나 보시라이는 실각한 후 약 반년간 불상사에 대한 공식 보도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는 장쩌민에게 가까운 당중앙 선전부가 엄격한 보도 통제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1989년 6월 천안문 사건으로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처럼 보시라이의 당적은 보류해야 한다는 의견이 당내에서 한때 주류를 이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보시라이의 당적을 남기면 정치적으로 부활할 가능성이 있어 보복이 두려운 후 주석은 초조해 졌다.
최근 센카쿠 영토분쟁과 남중국해 문제에서 시 부주석이 외교 문제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당내 거래에서 후진타오파가 정책면에서 시진핑의 주장에 양보하는 대신 보시라이 엄벌을 성사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5년에 한번 열리는 당대회 일정은 8월에 발표되는 것이 통례지만 이번에 9월말로 늦어진 것은 당내 협상이 난항을 겪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일본 산케이신문)
http://sscn.kr/news/view.html?section=1&category=3&page=2&no=2917